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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읽을거리

Clube da Esquina 피치포크 리뷰

by 블랙탬버린 2024. 1. 13.

원문: https://pitchfork.com/reviews/albums/milton-nascimento-lo-borges-clube-da-esquina/

 
 

 
그 당시 리오 그란데 드 치마의 시골지역에서 자랐다면, 두 소년을 토뇨와 카카우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둘은 축구나 구슬치기를 하든, 근처의 폭포에서 수영하든 간에 떼어 놓을 수 없는 사이였다. 어느 날 오후 토뉴와 카카우는 사진작가('카피'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카를루스 다 시우바 아순상 필류가 폭스바겐 비틀을 타고 지나갈 때 흙 언덕에서 놀고 있었다. 그는 브레이크를 밟고 소년들에게 큰소리로 말한 다음, 먼지가 가라앉자 사진을 찍었다. "번개와 같았어요." 라고 카피는 회상했다. "그건 강렬한 사진이에요. 브라질의 얼굴이죠. 당시는 몇몇 예술가들이 망명 생활을 하던 때였습니다,"

카피는 그날 두 소년의 이름을 알아내지 못했지만, 나중에 브라질 뮤지션 밀통 나시멘투와 르 보르지스에게 사진을 보여주자, 그들의 1972년 더블 앨범 'Clube da Esquina'의 앨범 커버에 꼭 맞는 사진을 찾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그 사진을 어린 시절의 나시멘투와 보르지스라고 생각했다. 이후 40년 동안 앨범커버의 소년들은 브라질 전역의 수수께끼였는데, 그 소년들을 추적하기 위해 일종의 수색을 해야 했다. 약 40년 후 기자와 사진작가가 마침내 토뇨와 어린 시절 친구를 추적하는 데 성공하여 상징적인 사진을 재현하기도 했는데, " 차에 탔던 누군가가 저를 향해 소리쳤고 저는 미소를 지었어요," 라고 토뇨는 회상했다. "저는 굶주렸기 때문에 누군가 준 빵 한 조각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맨발이었죠. 그런데 제 사진이 앨범 커버에 쓰였다는 건 꿈에도 몰랐어요. 어머니가 기뻐하실 겁니다. 제가 어렸을 때 찍은 사진이 없었거든요."

잔인할 정도로 억압적인 군사 정권의 험난함에 깊이 빠져있던 1972년은 브라질 팝 음악의 분기점이 된 순간이었다. 노부스 바이아누스의 Acabou Chorare(눈물을 그쳐요), 파울리뉴 다 비올라의 A Dança Da Solidão(고독의 춤), 넬슨 안젤로와 조이스의 듀오 앨범, 그리고 팀 마이아, 자르드스 마칼레, 톰 제, 엘리스 헤지나의 셀프 타이틀 앨범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수년간 망명생활 후 트로피칼리아의 영웅인 질베르투 질과 카에타누 벨로주는 각각 'Expresso 2222'와 'Transa'로 커리어 하이라이트를 받으며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 위로 떠 오른 것은 브라질 음악 역사상 가장 야심 찬 음반 중 하나인 'Clube da Esquina'였다. 'Blonde on Blonde'나 'Exile on Main Street'과 같은 서구 클래식의 다른 작품들과 같이 논의되는, 더블 앨범일 뿐만 아니라 더욱더 고무적이고 신비로운 바로 그 작품이다.

밀통 나시멘투의 음악은 신비롭고 솔직하며 뇌리를 떠나지 않고, 숭고한 땅에서 천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Clube da Esquina'의 현악 편곡을 제공하고, 나중에 로버타 플랙, 프랭크 시나트라, 쿨 앤 더 갱과 함께 작업하게 되는 유미르 데오다토는 나시멘투의 음악을 클래식과 유사하게 들었지만, 다음과 같이 인정했다. "지금까지 저는 그의 노래가 주는 만큼의 리드미컬한 자극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새롭고, 신비하고, 흥미롭고 도전적이에요. 밀통 나시멘투의 음악이 무엇인지 깊이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러한 극단의 경지는 20세기 음악에서 가장 깊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에게 어울린다. 그건 같은 동포뿐만 아니라, 폴 사이먼, 어스 윈드 앤 파이어, 허비 행콕, 애니멀 콜렉티브를 유혹하고 고무시켰다. 비브라토뿐 아니라 순수한 음색을 유지할 수 있고, 인간의 목소리보다 열대 조류의 외침에 더 가까운 말 없는 비명을 지를 수 있으며, 공명하고 깊이 있는 목소리이지만 천상의 가성까지 올라갈 수 있다. 또 엘리스 헤지나는 이렇게 말했다, "신이 노래하신다면, 밀통의 목소리로 하실 겁니다."

나시멘투는 1942년 리우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나시멘투가 어렸을 적 돌아가셨고, 그의 입양 가족은 나시멘투가 3살일 때 브라질의 미나스제라이스주로 이주했다. 그의 의붓어머니는 상징적인 20세기 작곡가 에이토르 빌라로부스의 합창단에서 노래를 불렀고, 거리에서 나시멘투는 크리스마스 시즌 동안 교회음악, 낭만적인 toadas(곡조)와 folia de reis(브라질의 종교 축제)를 들을 수 있었다. 포르투갈 식민지에 아프리카 노예 노동의 흐름을 가져온 17세기 골드러시 이후에 미나스제라이스주의 인종적 다양성은 풍부한 음악 스펙트럼과 인종적 긴장을 낳았다. 트레스폰타스의 작은 마을에 사는 몇 안 되는 흑인 아이 중 한 명인 나시멘투는 매일 그런 편협함을 느꼈다. 그러나 자신이 입양된 미나스제라이스주의 음악 문화를 완전히 흡수했고, 그의 오랜 음악 경력 동안 자신의 노래에 울려 퍼지게 했다.

음악에 사로잡힌 나시멘투는 1963년, 수도인 벨루오리존치로 이주하여 회계 일을 맡았다. 그러나 그는 밤에 돈을 내며 클럽에서 공연했고, 두 보르지스 형제인 마르시오와 그의 동생 로와 친밀한 우정을 쌓았다. 마르시오와 함께 그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누벨바그 고전 '쥴 앤 짐'을 감상하며 마지막 상영까지 몇 번이고 감상했다. 나시멘투는 그날 밤 친구와 함께 자신의 노래를 만들 영감을 얻았다. 나시멘투는 "제 노래는 모두 영화와 같습니다, 전부 촬영적(cinematographic)이죠,"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시멘투가 비틀즈를 처음 들은 것은 로를 통해서였고, 어떻게 클래식 음악과 팝이 결합될 수 있는지 깨달았다.

MPB 랭크를 통한 나시멘투의 부상은 혜성 같았다. 1965년 첫 MPB 페스티벌에서의 공연이 주목을 받았으며, 69년에 그는 뉴저지 북부에 있는 루디 반 겔더의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 크리드 테일러와 녹음하고, 허비 행콕뿐만 아니라 동료 브라질 재즈 스타 유미르 데오다토와 아이르투 모레이라가 포함된 밴드를 지휘했다.

하지만 그가 벨루오리존치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의 "길모퉁이 클럽"이 탄생 한 것은 산타테레사 인근의 지비노폴리스와 파라이소폴리스의 길목에 있는 보도에서 친구들과 약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잼을 연주했을 때였다. 당시에 클럽도, 조직적인 운동도 아니었고(현재는 인기 있는 음악 공연장이 교차로에 있음), 그들의 "길모퉁이 클럽"은 보사노바, 비틀즈, 사이키델릭 록, 서양 고전, 토착 남미 음악,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그리고 이외의 다양한 사랑하는 것들을 한데 묶었다. 1971년, 나시멘투와 친구들은 리우의 동쪽에 있는 피라티닝가 해변의 집을 빌려 노래를 엮었고, 이듬해 'Clube da Esquina'가 발매되었다.

브라질 팝의 랜드마크가 된 앨범의 성공은 나시멘투를 MPB의 스타로 인정했을 뿐 아니라, 클럽의 베이시스트 베토 게드스, 기타리스트인 토니뇨 오르타, 넬슨 안젤로의 커리어의 시작이었다. 나시멘투는 단연코 클럽에서 가장 유명한 멤버였지만, 그의 이름은 표지에 나와 있지 않고, 당시 20세의 로 보르지스와 공을 나누었는데, 그는 6곡의 노래를 만들었다. 또한 나시멘투의 얼굴도 쉽게 볼 수 없다. 그의 작은 사진을 찾기 위해서는 게이트 폴더에 있는 150장의 사진을 샅샅이 뒤져야 한다. MPB 연구가 찰스 페론은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 때문에… 나시멘투의 레퍼토리라는 집합적 측면은 종종 간과되곤 하죠. 'Clube da Esquina'는 만남의 개념과 모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Clube da Esquina'의 마법은 나시멘투와 친구들의 영향을 전부 알 수 있지만, 그들의 연금술은 그 모든 것을 더 높은 주파수로 진동하게 만든다는것이다. 캐주얼하고 탁월하며 계획적이고 즉흥적인 이 앨범은 Pet Sounds, Innervisions, The White Album이 모두 하나로 합쳐져 있으며 브라질 앨범을 단지 몇 장만 아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포르투갈어를 전혀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성악 하모니, 훅, 오케스트레이션은 언어의 경계를 벗어나 심장을 강타한다.

따라서 바다, 부두, 나시멘투의 행복에 대한 애원의 이미지가 담긴 'Cais'의 가사를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 만들었다"는 노래를 부른 후 잊혀지지 않는 발라드가 1분35초쯤에 줄어든 다음, 마이너 코드와 무언의 하모니는 해안을 떠나 미지로 표류하는 씁쓸한 스릴을 전달한다. "O Trem Azu"의 "태양은 머리 위에 있어"라는 가사를 느끼는 데에는 합창이 너무 따뜻하고, 나른하고, 뚜렷하기에 번역이 불필요하다. 카카오 꿀과 집시 비의 감성이 어우러진 감각적이고 황홀한 "Cravo E Canela"도 마찬가지다.

이 앨범은 그런 변화, 무더운 날 피부에 상쾌한 산들바람처럼 작용하는 순간, 구름을 뚫는 태양 줄기, 붐비는 버스에서의 친절한 몸짓 등, 우리 일상생활에서 작은 움직임들이 어떻게 잔향을 일으킬 수 있는지 반영하고 있다. 가사는 미터기의 미묘한 전환, 키 전환 또는 기계장치의 회전축처럼 각 노래의 시작했던 곳과 전혀 다른 공간으로 청자를 내려놓는다. 기차, 도로, 교통수단이 나시멘투의 글에 반영되기 때문에 이러한 움직임은 의도적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음악을 "소달구지의 일종, 펼치고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Dos Cruces"의 끝부분에는 웅웅대는 기타의 점층이 있고, 교회의 종소리는 "San Vicente"를 비추며 울려 퍼진다. "Um Girassol Da Cor De Seu Cabelo"의 중심부에 있는 애절한 첼로와 현악은 "그대 머리색의 해바라기"에 대한 구원적인 합창을 시작한다.

여분의 피아노 발라드 "Um Gosto de Sol"에서 나시멘투는 반쯤 잊혀진 꿈, 외국 도시에서 웃고 있는 낯선 사람, 잠에 빠지는 강, 배의 달콤한 과육 등을 통해 움직이며, 모든 것이 촉각적이면서도 형언할 수 없다. 그리고 "Cais"의 마이너 키 모티브가 이번에는 피아노와 목소리가 아닌 현악 4중주로 돌아온다. 이는 앨범에서 루이스 부뉴엘(초현실주의 영화감독)의 가치를 지닌 초현실적인 순간으로, 부두에서 떠내려온 배의 모습이 과일 그릇에 배와 나란히 놓여 있다. "Eleanor Rigby"의 가장 가슴 아픈 현악 부분은 표면에 내재된 우울함과 소외감을 바로 드러낸다.

그러나 이 앨범의 가장 밝고 경쾌한 곡 중 하나는 브라질 연방 검열관들이 원래의 녹음을 막았는데, 이는 음악과 단어 사이의 단절을 보여주는 예시이다. "Paisagem Da Janela"(창밖의 풍경)에는 컨트리풍 부드러운 록에 울리는 기타 라인이 들어가 있지만, 로 보르지스의 후렴은 이러한 가벼움을 경시한다. '내가 병적인 색들에 관해 말할 때/추악한 이들에 관해 말할 때/이 폭풍에 관해 말할 때/그대는 듣지 않았어/그대는 믿고 싶지 않아/하지만 이건 정말 평범한 거야.' 그것은 군사정권 하에 있는 순간에 대한 논평이 될 수 있는 과거를 말한다. 또한 이 앨범에서 가장 매력적인 합창곡 중 하나로, 노래를 따라부르기 자연스럽다.

군부 독재정권이 이런 노래를 억압하는 것은 완벽한 대중가요와 순수한 편곡을 넘어서는 것임을 드러낸다. 'Clbue da Esquina'는 또한 가장 미묘하고 심오한 혁명 행위를 의미했다. 언론인 파울로 티아고 드 멜로는 'Clube da Esquina'를 둘러싼 억압적인 정치 풍토에 대해 "군사 독재는 긴박한 요소를 부과했다."라고 저술했다. "그리고 그 시절 살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해하는데 어려울 수도 있다. 독재정권으로 인한 질식은 삶을 다급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폭정 아래서 청년들의 목가적인 가능성은 무너진다. 스탈린주의 소련,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 또는 60년대와 70년대 남반구 전역에 발생한 잔혹한 군사 독재 정권하에서 사회적 유대는 단지 긴장되고 단절되었을 뿐만 아니라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나시멘투가 앨범의 첫 순간에 멕시코 혁명 영웅 에밀리아노 사파타를 언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모든 폭군과 마찬가지로 전체주의 정부는 인간을 격리함으로써 삶의 공공 영역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한나 아렌트의 1951년 고전 "전체주의의 기원"에 서술되어있다. "그러나 정부의 한 형태로서 전체주의적 지배는 이러한 고립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이다... 그것은 외로움, 즉 세상에 전혀 속하지 않는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밀통 나시멘투와 그의 친구들은 함께 어울리며 자국의 "바지우 문화" (문화적 공허함)한가운데에서 봉화를 올렸다.

'Clube da Esquina' 앨범 자체와 그 이후의 움직임은 캐주얼한 사회적 만남과 함께 모여서 연주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 결과 나시멘투 뿐만이 아닌 전체 집단을 끌어올렸다. 1974년 앨범 'Native Dancer'에서 색소폰 연주자 웨인 쇼터와 함께 북미 관객에게 다시 소개하거나 듀란 듀란에서 팻 메스니, 퀸시 존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과의 후속 협업을 통해 나시멘투의 협업 정신은 계속 이어졌다.

이러한 동지애와 공동체 의식은 나시멘투의 팔세토와 기타가 아직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상상할 수 있는 미래를 향해  울려 퍼지는 “Saídas E Bandeiras Nº 2”의 짧고 즐거운 1분 30초 동안 들을 수 있다. '큰길로 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마주하라/차오르는 밀물을 쓰러트리기 위해 모든 힘을 모아라/암석은 사내로 변하고/사내는 밀물보다도 더 단단하다.' 길모퉁이에서 함께 연주하던 나시멘투와 그의 친구들, 심지어 흙더미 위에 앉아 있는 토뇨와 카카우까지 모두가 브라질의 얼굴이 되었다.